기도가 막히는 이유
기도하다 보면 때로 기도가 막혀서 잘 되지 않는 것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적인 기복이 있기 마련이어서 어느 날은 기도가 잘 되지만 어떤 날은 기도가 힘들고 막혀서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단순이 신체적인 변화 사이클에 의해서 기도가 영향을 받는 것과는 달리 매우 심각할 정도로 기도가 막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도가 제대로 되지 않고 힘이 들고 답답하며 때로는 한 마디의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가라앉고 마음 속이 눌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기도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기도가 안되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기도를 포기하고 말지요. 이렇게 되면 그 다음의 기도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힘이 들게 되며, 이런 날이 계속 되다 보면 마침내 깊은 영적 침체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기도가 막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도가 막히는 원인은 사람에 따라서 다양하지만 보편적으로 겪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에게 범죄하였거나 불순종하고 있는 경우,
둘째, 중보기도로 이끌 시점에 이른 경우,
셋째, 말하는 기도에서 듣는 기도로 변화하여야 하는 경우 등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에게 범죄하였거나 불순종하고 있는 경우
먼저 하나님에게 범죄하였거나 불순종하고 있는 경우, 하나님은 그 사람의 기도를 듣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이 외면하시면 우리의 영은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영이 심하게 위축을 당하게 되고 이것이 우리 몸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범죄와 불순종을 하게 되면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의 경우에 자신의 영 보다는 양심이 위축을 당합니다.
양심에 거리낌이 생기고 그것이 부담이 되어 일시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걸리게 되어 기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지요.
족제비도 낯이 있다고 하는 말처럼 보편적인 사람에게 양심은 범죄함과 불순종에 대한 경고를 알리는 수단입니다. 아직 영적으로 거듭나지 못했거나 영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의 경우 성령님은 양심을 이용하여 말씀하십니다. 양심의 소리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유효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이런 변화를 바로 영이 느끼고 우리 몸에 그 신호를 보냅니다. 영이 보내는 신호는 일체의 영적인 일이 위축되거나 거부되는 것이지요. 영의 일이 범죄함으로 인해서 자유함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하신 결과로 영의 자유함을 얻습니다. 이 말은 우리 영이 자신의 몸에서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회복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영이 자유로워지면 우리 몸에서 여러 가지 영적인 현상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 자유하지 못했을 때 전혀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거듭나는 순간부터 다양한 영적 경험들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다시 죄를 짓고 불순종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영은 다시 자유함을 잃거나 활동이 위축되어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정기적으로 우리의 죄를 살피고 회개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죄가 제때에 처리되지 않으면 이 죄는 다음 죄로 인해서 우리 의식의 밑으로 가라앉게 됩니다. 이런 죄는 표면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회개할 기회를 좀처럼 얻기 어렵고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고백하지 않은 죄는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이런 죄를 마귀가 이용하여 그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 발판으로 삼게 되는 것입니다. 죄와 불순종으로 인해서 기도가 막히기 때문에 우리는 즉시 그 죄를 기억하고 회개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 죄가 우리 의식의 밑으로 가라앉기 전에 처리하게 하시려고 성령님은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십니다. 그 중 한 방법이 기도가 막히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중보기도로 나가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중보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다 알고 있지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중보기도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하나님에게 아뢰는 것입니다. 중보기도 대상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제나 소원을하나님에게 아뢰는 것은 일반적인 수준의 중보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초보적인 수준인데 몇 마디 하고 나면 할 말이 없지요. 별로 깊은 관계가 아닌 사람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형식적인 중보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중보에서 보다 깊은 내용을 다루기 위해서는 예언적 중보기도를 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정보를 가지고 하나님에게 아뢰는 것입니다. 예언적 중보에는 방언이 있습니다.
방언을 통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중보하게 되지요. 이런 경우 그 사람의 속 사정은 그 사람의 영만이 알기 때문에 우리의 영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그 사람의 영과 접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인터넷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서버에 접속하는 것과 같습니다. 서버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아야 하듯이 우리의 영이 다른 사람의 영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매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불법으로 접속하는 것을 우리는 헤킹이라고 하듯이 불법으로 접속하는 것은 마귀가 하는 짓입니다.
성령님은 합법적으로 상대방의 영에 접속할 수 있도록 우리의 영을 인도하십니다. 이렇게 접속하면 그 사람의 내용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성숙하지 못한 일반적인 사람들의 중보기도에 주님은 방언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방언은 방언을 말하는 사람조차 그 의미를 알지 못하지만 성령님은 우리의 깊은 곳까지 아시고 우리를 위해서 대신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사정을 대신 간구하게 하심으로써 그리스도 공동체가 유기적으로 한 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방언이 중보기도가 될 때 그 방언은 평소의 방언과 다른 느낌을 받게 됩니다. 갑자기 힘이 들어가고 방언이 유창해지면서 아주 쉽게 할 수 있게 됩니다. 때로는 간간히 통역도 되기도 합니다. 방언이 무언가 색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예언적 중보기도로서의 방언은 앞에서 언급하였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생략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영적으로 성숙한 경우이거나 예언의 은사를 받아 예언자로 세워지기 위해서 훈련에 들어간 사람에게는 예언적 중보기도는 필수 과정이고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성령님은 그 내용을 부분적으로 알게 하십니다.
이것이 지식의 말씀인데 기도하는 사람이 타인의 영에 접속해서 그 사람의 속사정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숙한 예언자는 타인의 매우 은밀한 비밀까지 알게 되며, 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까지 알게 되어 이것을 회개하도록 촉구하고 도와 영적 회복을 이루도록 돕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초보 예언자는 말씀을 지키는 시험을 거치게 됩니다. 예언자에게 가장 힘든 것은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문 사역자는 타인의 비밀을 당사자의 허락이 없이 공개하는 것을 금해야 합니다. 공공의 유익을 위해서 공개할 때는 반드시 익명으로 해야 하는 것이지요. 비밀을 간직하는 것이 의무이며 책임입니다.
비밀을 공개해서 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게 되면 그 사역자의 능력은 그만큼 적어지게 됩니다. 예언적 중보기도를 위해서는 성령님이 이끄는 대로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자신이 평소 기도해 주는 사람이 여러 명 있지만 성령님은오늘 어떤 한 사람만을 위해서 집중으로 기도하기를 원한다면 그 사람 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주시는 기도 내용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기도할 단계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제까지 육적으로 기도했던 습관을 따라 계속 그런 기도를 하려고 하면 성령님은 그 사람의 기도를 가로막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듣는 기도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서서 듣는 기도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으므로 여기서는 중복되는 것을 피하고 기도가 막히는 것과 연관해서 다루기로 합니다. 기도가 막히면 이는 이제까지 행했던 자신의 기도 형태를 변화시키기 위한 성령님의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듣는 기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해야 하는 아주 일반적인 기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는 기도가 익숙하지 못한 사람이 많은 것은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하는 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말하는 것은 어려서부터 해온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듣는 것은 새로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듣기 위해서 전제되는 것이 기다림이지요. 기다리게 하기 위해서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를 막는 것입니다. 그 기다림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불과 몇 분 정도면 되는 것을 우리는 기다리지 못하고 말하려고 합니다. 말하는 기도에 너무 익숙해져서 눈감고 기다리는 몇 분의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조금만 기다리면 생각이 머리 속에 들어옵니다. 물론 자신의 생각이나 마귀의 생각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는 분별의 문제이므로 여기서는 다루지 않습니다. 듣는 기도는 우리의 의무적인 기도의 패턴이며 이 기도를 할 수 있어야 비로서 주님과의 친밀함을 만들 수 있고 주님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듣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비로서 주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만들어져 가고 주님에게 올바르게 헌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의 세 가지 영역의 변화를 위해서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막고 돌아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가 막히고 답답하다면 무작정 방황하지 말고 이런 부분을 깊이 점검하여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 승리하기 바랍니다.-장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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