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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합니다

벧세메스로 가는 두 마리 암소처럼*

by 설익은사모 2021.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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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세메스로 가는 두 마리 암소처럼*

롬 3 : 9 - 10

 

마크 트웨인은 ‘인류의 역사는 편견의 역사’ 라고 일찍이 말한 바 있습니다.

어떤 이는 “만약 인간이 편견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의 90%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편견의 역사가 길고 그 범위가 그만큼 광범위하다는 뜻입니다.

 

오늘 로마서 3장 말씀은 우리의 편견되고 치우친 삶을 바로잡는 능력이 있는 말씀입니다.

9 - 12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본문은 모든 인간이 다 치우쳤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치우쳤다는 말씀은 헬라어 원문에 비탈길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기울어져 이탈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이 정도를 걷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치우쳐 있습니다. 그리고 그처럼 치우친 사람들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 치우쳐” 라는 말씀에 이어서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正道를 걷지 않는 사람,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않는 사람, 정상적인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무익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무익하다는 것은 곧 탈선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대사회에도 탈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혹시 사람이 보기에는 치우치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치우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천지창조 기사는 창조된 천지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매우 살기 좋게 창조되었습니다. 사람이 죄와 편견을 버리고 이 세상을 볼 수 있다면 하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이 세상이 심히 좋은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치우친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생각을 하도록 마음과 생각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또 치우친 언어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 6절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식생활도 치우쳐 있습니다.

지나치게 육식을 즐기는 사람, 또 일절 육식을 먹지 않고 야채에만 의존하는 사람등 분명한 근거도 없는 신념을 좇아 균형없는 식생활로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육식과 채식 모두 허락하셨으며 두 가지를 고르게 섭취할 때 비로소 인간의 몸은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 애정 표현에도 치우친 경향을 보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행위는 무엇이든 좋게 해석합니다.

반면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나쁘게 봅니다.

 

성경 속에서는 이삭과 리브가를 통해 치우친 애정이 가져오는 불행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삭은 고기를 좋아하여 늘 사냥을 해서 맛있는 고기를 대접해 주는 큰 아들 에서를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인 리브가는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별로 받지 못하는 작은 아들에게 치우쳐 있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치우친 애정으로 인해 결국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고 형에게서 생명의 위협을 당하게 되었으며 가정 전체가 불행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그들 가정의 문제 뿐만 아니라 4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스라엘과 아랍의 분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지나치게 치우친 행동 경향을 보입니다.

누구든 자신의 의사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폭력적인 행동도 불사합니다.

 

신앙생활 조차도 극단적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생활에만 의존하며 자신의 일상생활은 등한시합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사회생활은 열심히 하면서도 교회생활에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합니다. 하나님은 영과 육을 함께 창조하셨습니다. 영이 중요한 만큼 육체도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영적 생활과 육적 생활의 균형은 성도의 생활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본문은 다 치우쳤다고 말씀합니다.

왜 이처럼 치우치게 되었을까요?

 

본문 9절의 말씀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본문 9절은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이 치우치게 된 것은 바로 죄 때문입니다. 본문은 또 모든 인간이 ‘죄 아래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헬라어 원문에 ‘죄의 장중에, 죄의 지배하에 있다’ 는 의미입니다.

 

로마서 7장을 보면 “죄가 기회를 타서..........” 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성경은 본문처럼 ‘사탄’을 ‘죄’라는 말로 대신 표현하기도 합니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쓰러뜨린 원수 마귀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며 우리로 하여금 죄에 빠지게 하고 죄의 습성에 젖어들게 합니다. 죄에 빠지면 모든 것에 치우치게 됩니다.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젖먹이 송아지들을 외양간에 떼어놓고 법궤가 실린 수레를 끌게 된 암소였습니다. 본능대로라면 이 암소들은 새끼들이 있는 외양간을 향해서 가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이 기사가 소개된 사무엘상 6장의 말씀을 보면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암소 스스로가 치우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붙잡으셨기 때문에 치우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옵니다.

 

리빙스턴은 “빈 배가 가라앉거나 넘어지지 않으려면 바닥에 짐을 넣어야 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바닥이 비어 있는 배는 균형을 잡지 못하므로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기울어지게 됩니다.

성도의 삶에서도 이 바닥 짐과 같은 것이 바로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과 기도가 없는 삶은 텅 빈 배와도 같아서 조그만 일에 의해서도 쉽게 치우치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을 치우치지 않도록 붙잡으시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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