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장ㅡ변화된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한 도르가
속옷과 겉옷을 지어준 도르가
사도행전 9:36-43
성경에는 이름없이 빛도 없이 순종하고 헌신한 여자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욥바는 사마리아 지역 서해안에 위치한 항구 도시였습니다. 한때는 이방 베니게의 통치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도르가 때문에 많은 욥바 사람들이 주를 믿었다고 했습니다.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42)
도르가는 많은 욥바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들이 대체로 여자들입니다. 남자 성도들에게는 좀 안되었지만 성경에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자들 중에도 이름 없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가정적으로 행복하지도 않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도르가도 가정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보잘 것 없는 불행한 사람들을 택해서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들로 만드시는 것 같습니다. 이제 도르가가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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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도르가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은 여제자였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전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거의 예외 없이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많은 것을 발견합니다. 김순애 권사님이 그렇고 안강자 권사님이 그렇습니다. 김순애 권사님은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람들을 칭찬하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것이 전도의 기본이라고 항상 말합니다. 아람에 포로로 잡혀갔던 작은 계집아이도 아람 주인에게 선을 베풀었기 때문에 아람 주인과 아람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선행과 구제는 전도의 필수 조건이 됩니다. 아니 주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의 필수 조건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5:16에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13:16).
도르가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 여제자였는데 특히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은 여제자였습니다. 도르가의 믿음은 구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도르가는 욥바에 사는 모든 과부들에게 속옷과 겉옷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구약시대부터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신10:17-18).
그리고 나그네를 사랑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신10:19).
도르가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욥바에 사는 모든 과부들에게 속옷과 겉옷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도르가는 도움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욥바 지역의 모든 과부들은 도르가가 만들어 준 속옷과 겉옷을 입으면서 성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을 것입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도르가는 아주 아름다운 여자였지만 주님과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 결혼을 포기하고 혼자 살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도르가는 주님 앞에 섰을 때 많은 보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부언했습니다.
우리는 도르가를 통해서 전도의 기본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선행과 구제하는 일을 힘쓰는 것입니다.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이 되는 기본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선행과 구제하는 일을 힘쓰는 것입니다.
둘째 도르가는 죽음을 통해서 사랑의 눈물을 흘리게 한 여자였습니다.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병들어 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눈물을 흘리며 울었습니다. 믿음과 사랑의 사람도 병들어 죽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사랑의 사람이 죽을 때 그 사람의 자리가 너무나 크게 비어있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눈물과 슬픔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믿음과 사랑을 되새기게 됩니다. 그가 믿은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결국 성도의 죽음은 귀중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성도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합니다.
도르가는 죽음을 통해서도 많은 사람은 옳은 데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도르가가 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울면서 그가 지어주었던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였다고 했습니다. 도르가의 사랑을 되새겼고 도르가의 믿음을 되새겼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눈물은 마음을 여는 귀한 역할을 합니다. 도르가의 죽음으로 눈물을 흘리던 많은 과부들이 주님께로 더 가까이 돌아왔고 주님을 더욱 뜨겁게 믿게 되었습니다. 도르가는 자기의 죽음을 통해서도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슬픔과 사랑의 눈물을 흘리게 했고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여자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아침 도르가를 통해서 우리의 죽음이 어떤 죽음이 되어야 할 것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 사람 잘 죽었어.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었어. 아니 귀찮은 존재였어."
이런 말을 듣는 불행한 죽음이 될지?
또는 "그 사람이 없이 그 사람의 위로와 격려와 도움 없이 이제 내가 어떻게 세상을 홀로 살아간다는 말인가?"
이렇게 나의 죽음을 아쉬워 하는 행복한 죽음이 될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내일 귀중한 죽음을 죽을 수 있도록 오늘 귀중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도르가는 귀중한 죽음을 죽은 행복한 여자였습니다.
셋째 도르가는 새로운 삶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한 여자였습니다.
“베드로가 그의 산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도르가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나사로처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욥바의 많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 도르가를 보고 주를 믿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들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누구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눅16:31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그러면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 드려야 하겠습니까?
도르가가 다시 살아나므로 두 가지를 나타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릴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과 죽음의 목적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도르가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들이 모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실 예수님이 그의 지상 생애에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신 일은 세 번밖에 없었습니다. 한동대학의 김영길 총장과 김영애 권사는 극심한 가난과 궁핍의 밑 바닥에서 다시 일어나므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나타내보였습니다. 우리는 현세에서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삶을 살므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르가가 다시 살아나므로 나타낸 것은
둘째로 자기의 변화된 삶이었습니다.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변화된 삶을 살게 됩니다.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천국 중심의 삶을 살게 되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게 되고 이웃 중심의 삶을 살게 되고 보다 높은 차원의 삶을 살게 됩니다. 나사로가 무덤에서 다시 일어났을 때 그는 변화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사로를 보기만 해도 감동을 받았고 은혜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사로를 보고 예수를 믿었다고 했습니다(요12:9,11).
도르가가 다시 살아났을 때 그는 보다 높은 차원의 삶을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보다 성결하고 보다 사랑이 충만한 천국 중심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물론 선행과 구제도 더 많았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된 삶입니다. 목사와 장로와 권사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보다는 말보다는 변화된 삶입니다. 그저 가만히 앉아 있든지 가만히 서 있어도 됩니다. 변화된 인격과 삶을 나타내 보이기만 하면 됩니다. 도르가는 변화된 새로운 삶을 삶으로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도르가의 삶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삶은 욥바 사람들뿐 아니라 가이사랴 사람들까지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참으로 별과 같이 빛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도르가 때문에 욥바에 왔다가 욥바에 여러날 머물러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기도하던 중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베도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이사랴 고넬료 집에까지 갔습니다. 그래서 고넬료와 가이사랴 사람들이 많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누구 때문에 일어났습니까? 도르가 때문이었습니다. 도르가가 욥바 복음화의 주역이었고 베드로는 조역이었습니다. 가이사랴 복음과의 시작은 도르가로부터 였습니다. 베드로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놀랍습니다. 이름 없는 한 여인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름 없는 한 여인을 들어서 별과 같이 빛나는 귀중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첫째, 우리의 삶에 선행과 구제가 얼마나 많은지를 살펴봅니다.
둘째, 우리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과 사랑의 슬픔을 남길 수 있는 귀중한 죽음이 될지를 살펴봅니다.
셋째,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변화된 삶을 나타내는 삶인지를 살펴봅니다.
나 한 사람의 삶이 먼 데 있는 사람에게까지 복음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이와 같은 복된 삶이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되지만 사실은 우리들의 의지와 노력과 기질로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책임이라는 말씀입니다. 도르가처럼 속옷과 겉옷을 지어주는 구체적인 선행과 구제가 있어야 합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바랍니다. 도르가처럼 별과 같이 빛나는 존귀한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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