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육계 주위상계(三十六計 走爲上計)*
다급할 때.. 부리나케.. 뒤도 안돌아보고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튀는 것을
삼십육계 줄행랑친다고 그렇게 말들 합니다.
죽어라고 도망치는 것.. 실제로 兵法의 마지막 36번째 전술로써 36계라고 한다네요.
다들 알고 계셨다구요? 음.. 저만 몰랐군요.
중국고어를 들먹일 필요없이 세계적인 해전의 명장 이순신장군도 백의종군할 때
명량해협인가에서 아군 13척대 왜군 333척의 불가능한 전쟁을 지형(*울돌목)과 조류를 이용해
일단 후퇴하는 척하며 유인하다가 대승을 거두었다고 했습니다. (*울돌목/ 역사인물 탐구 르뽀에서 들음)
도망치면 살 길이 있다
살아가면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감정이 무엇일까요?
젊은 날 불타오르는 정욕(성욕)이 문제일까요?
잘은 모르지만 그건 어쩌면 자신의 의지로 차단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해요.
유혹받는 인자에게서 멀어질 수 있는 통제력을 발휘할 수가 있을테니까요.
실제로 성경 속의 아름다운 청년 요셉이 그렇게 도망쳤더랬습니다.
이방나라에 팔려온 노예처지였지만 장군의 신임을 받아 그 집을 섬기게 되었을 때
혈기왕성한 나이 청년 요셉은 온 몸으로 육박해오는 여인의 음욕을 삼십육계 줄행랑 치는 방법으로 물리쳤습니다.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 하매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창39:10-12)
옷을 버리고 도망하였다면 와이셔츠바람으로 도망했겠습니까? 아니면 런닝과 팬티차림이었겠습니까?
아쉽게도 구약시대 유대나라 사막지대였고 겉옷이 곧 이불이요 속옷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도망치는 청년의 벗어놓은 겉옷을 손에 쥐고 부들부들 떠는 정염의 여인 벌거벗은 채 허둥지둥 내빼는 청년 요셉.... 그 상황에서 누가보더라도 변명할 여지도 없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성추행범에 미수강간법으로 올가미가 씌어지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노예로 잡혀오던 순간부터 오늘까지 그의 인간 됨됨이를 주욱 지켜보며 집안 곳곳 열쇠를 다 맡기고 신임을 해 주던 주인은 아마도 자기 아내의 변명같은 속임수에 속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시대상황으로 보아 만에 하나 종놈이 상전의 부인을 겁탈하려고 했다면 노예는 사람이 아니므로 그 자리에서 처형당해도 항거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는 감옥에 가두는 형에만 처해졌습니다. 물론 그것마저도 하나님의 섭리였겠지요.
어쨋든 뿌리쳐야 할 것을 과감하게 뿌리칠 줄 알았던 그는 인생의 승리자였습니다. 귀한 청년.. 그가 나중에 애굽을 통치하는 총리자리에까지 발탁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도 도망치고 싶을 때 있습니다.
아무리 기를 쓰고 극복하고 부딪혀 이겨보려 해도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고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잠시 앉아 쉬어봅니다. 피할 수 있는, 도망칠 수 있는 용기도 지혜입니다. 전력을 가다듬어 다시 도전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후퇴를 해야 할 순간 앞에 맞닥뜨렸을 때 이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고 또 다른 기회라 여기면 다시 용기를 가지고 일어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대치가 높다는 것은 (0) | 2021.10.28 |
---|---|
후회하시는 하나님 looks at the heart* (0) | 2021.10.28 |
잘 될 거야 다 잘될 거야[내 생애 첫 공중 대표기도] (1) | 2021.07.31 |
그래서 기도노트가 필요해요, 예수동행기도 시작합시다* (0) | 2021.07.19 |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1) | 2021.06.25 |
댓글